<북리뷰> 도고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2003년 02월 07일 (금)

신명환 글·그림/초록배매직스

‘스노우캣’이란 고양이가 있다. 지난해 ‘독자만화대상 2002’ 에서 온라인 부문 최고상을 수상한 캐릭터다. 낮잠자기와 도넛먹기를 주특기로 하고, 재즈듣기·여행하기·영화보기를 주생활 메뉴로 삼는 21세기의 문화백수다. 이 시대 젊음의 코드 중 하나인 ‘쿨’한 허무주의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도고’는 겉보기로 그와 좀 닮았다. 얼굴의 반을 차지할만큼 동그랗고 커다란 눈망울 하며 오똑하게 하늘을 향해 펼친 두 귀는 둘이 오누이 사이인가 착각할 정도로 흡사하다. 다른 구석도 있다. 스노우캣의 코가 영문 엑스(x)자로 귀찮게(?) 생략된 반면 도고의 그것은 때론 까맣게, 때론 하얗게 앙증맞도록 귀엽게 달려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외모가 아니다. 도고의 ‘묘생( 猫生)’철학은 스노우캣의 서구지향·도회적 세련미와 180도 궤를 달리 한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도고는 고양이 달마인지도 모른다. 풍경 속에 달린 물고기를 생선뼈로 묘사한다든가, 겨울철새의 편대비행을 물고기 형상으로 그려넣은 의도는 ‘부처 눈엔 부처, 도둑 눈엔 도둑, 고양이 눈엔 생선’의 선문답을 연상시킨다. 거울 속 나를 맞닥뜨리고 그를 부둥켜안는 장면, 눈사람의 ‘처음이자 마지막 봄나들이’, 불끄러 나온 소방대원이 도도하게 불타는 석양을 마주하는 컷은 해탈의 불심을 몇 줄의 공(空)한 선으로 요약했다 . 작가의 만만찮은 불교 공력을 짐작케한다.

물론 종교적인 심오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자 가두기’ ‘네 멋대로 살아라’에선 답답한 속세의 속박들을 한 걸음에 박차고 싶어하는 자유혼이 엿보인다. ‘쉘 위 댄스?’ ‘아침운동 ’ ‘잭팟이 터지다’ 등의 작품에서는 ‘아햏햏’류의 무논리·무대책성의 웃음보를 터뜨리게 하는 경쾌함까지 흘러나온다.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있는 스노우캣과 달리, 긴 코의 못생긴 쥐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콧수염 장발아저씨 등 조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골치아프고 긴 책 읽기 싫어하는 정초의 ‘귀챠니스트’들에게 아무 생각없이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작품성 ★★ ★★ 대중성 ★★★★★)

노성열기자 nosr@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