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가…’ 펴낸 신명환씨] 대사는 줄이고 사색공간 넓히고…

‘Cartoonist & Architect.’

만화가들은 보통 명함이 없다. 작품이 명함이자 얼굴이 명함인 만화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카투니스트 신명환씨(35)는 명함을 갖고 다닌다. 그런데 그가 내민 명함에는 낯선 영어 단어 하나가 눈에 띈다. ‘건축가’를 뜻하는 ‘Architect’다. 만화가는 본업,건축가는 부업이라는 뜻일까? 그렇지는 않다. 건국대학교 건축학과와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만화가가 된 그가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명함에 반영한 것일 뿐이다.

지난 1993년 월간 시사만화잡지 ‘시사만평’에 카툰을 연재하면서 데뷔한 신씨가 데뷔 10년 만에 첫 작품집을 펴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제목을 패러디한 ‘도고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초록배매직스)이 그것이다. 책 전체를 그가 직접 디자인한 이 작품집에는 지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조인스닷컴’에 연재했던 100여 컷이 실려 있다. 한 칸짜리 카툰도 있지만 한 페이지 만화도 있고 예전에는 한 페이지로 선보인 만화의 한 컷 한 컷을 한페이지로 처리하는 등 형식적인 실험만화도 들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도고’(DOGO)라는 이름의 고양이. 공식적으로는 ‘도도한 고양이’이라는 뜻이지만 ‘도둑고양이’라는 뜻도 숨겨져 있다. 즐거울 때도,안타까울 때도,슬플 때도 늘 표정 변화가 없는 ‘도고’와 ‘도고’와 친구 사이인 쥐,‘도고’와 쥐에게 항상 당하기만 하는 사람(‘도고’의 주인 같지만 주인은 아니다)을 주인공으로 작가는 욕망과 의사소통의 문제,그리고 쾌락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대사보다는 색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각적인 면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큰 재미를 주기보다는 한 장 한 장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만화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신명환’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찾기는 쉽지 않다. ‘KUDEKI’라는 필명으로 책을 냈기 때문이다. ‘구더기’의 사투리인 ‘구데기’를 영어로 옮긴 ‘KUDEKI’는 대학교 1학년 때 붙은 별명이다. 신입생 환영회 때 ‘동물농장’ 노래를 개사해 “화장실에는 구데기∼ 나는 봤다,나는 봤다”고 부른 뒤 ‘구데기’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시사만평’에 데뷔할 때부터 ‘KUDEKI’라는 필명을 썼습니다. 똥을 먹고 사는 구더기처럼 더러운 정치판을 비판하면서 먹고 산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했지요. 그 후 쭉 ‘KUDEKI’라는 필명을 써 와 이제는 제 이름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언젠가 한 100명 정도 모인 호프집에서 종업원이 큰 소리로 ‘구더기씨’를 찾을 때는 계면쩍더군요.”

신씨는 최근 그동안 ‘공사 중’이던 홈페이지(www.kudeki.com)의 이달 말 재오픈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새 단장한 홈페이지에는 스케치 게시판과 유사한 일기 형식의 게시판 ‘네모’를 비롯해 그가 살아 왔던 집에 대한 추억이나 그가 살면서 느낀 집의 문제점 등 ‘건축가’로서 하고 싶은 집 이야기 등을 새로 선보일 계획이다.

/김철진 dreamy@sports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