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지난 봄 ‘이라크전’이 발발했을 때, 우리는 누구나 죄없이 피흘리는 민간인들과 총발받이가 된 어린 군인들을 보며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꼈을 것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손에 촛불을 들고 얼굴에는 피스 마크(Peace Mark)를 그리고, 어린 자녀와 함께 광화문 거리를 가득 채웠다. 이들은 이 땅에서 뼈가 굵은 ‘반미.반전’ 이데올로기의 메신저가 아닌 오로지 ‘평화’의 수호자로서 거리에 나섰다.
2003년은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전파되는 평화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던 ‘원년’으로 기록될 만한다. 그러나 이제 ‘2003년 평화의 봄’은 아득한 옛 이야기처럼 우리의 기억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잔인한 테러가 자행되고, 한반도에서도 ‘북핵 위기설’이 뜨거운 감자처럼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운동’의 불씨는 다시 타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라크전 당시 ‘전쟁’이 빚어내는 비인간적인 폭력에 분노했던 우리의 젊은 만화작가 14인이 그 기억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평화 그리기에 동참했다. 평화운동의 작은 불씨를 나눠가지고자 펜을 들고 뭉친 이들은 모든 전쟁과 폭력에 대항하는 ‘평화’의 힘을 유쾌하고 발랄한 상상력으로 담아내고 있다. 물론 이들이 ‘평화만들기의 도구’로 삼은 만화는 실시간 전쟁 상황을 알려주던 CNN, 미국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헐리우드의 영화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순응해가는 언론매체들에 대적할 만큼 막강하지는 않지만, 컷과 컷 사이에서 살아 숨쉬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힘은 결코 그 전파력이 약하지 않다.
정은향, 윤태호, 홍윤표, 이우일, 강성수, 박순구, 김미영, 심차섭, 홍승우, 도대체, 고경일, 변병준, 강도영, 신명환 등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이들 14인의 작가들은 각종 신문과 책, 그리고 인터넷 공간에서 요즘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만화계의 젊은 피들이다. 이번에 출간된 『만화로 평화만들기』는 이들 작가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작품집을 출간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개성이 뚜렷한 이들 작가들이 모처럼 같은 지상(紙上)에 모여 저마다 뿜어내는 ‘평화’의 색깔들은 너무나 다양해서, 기존의 작품 성향으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만화 잡지들이 하나둘 폐간하면서 창작 만화를 발표할 지면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두고 ‘만화의 위기’를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있는 우리 만화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서두에는 <평화를 위한 기도>라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가 지면으로는 처음 소개된다. 또한 지난 3월 미국 메인 주에서 열린 반전집회에서 ‘What about the Iraqi children?'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여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된 13세의 ’반전평화 소녀‘ 샬럿 앨더브런(Charlotte Aldebron)의 감동적인 연설문도 함께 실려 있다.

평화를 막아서는 모든 것에 딴지를 걸다-14인의 만화가들은 무엇을 꿈꾸는가?
딴지일보에 오랫동안 ‘꼬꼬일기’를 발표해온 정은향은 네팔 여행에서 찍은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사진 위에 꼬꼬 캐릭터를 그려넣어,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사회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야후』의 작가 윤태호는 누구나 폭격의 위험 없이 파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천하무적 홍대리』의 홍윤표는 홍대리 캐릭터를 등장시켜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웃는다. 이우일은 ‘평화적인 전쟁은 없다’는 것을 특유의 익살과 풍자를 섞어 그려내고 있다. 강성수는 'flower movement'가 평화운동의 시초임을 드러내며, 꽃으로 상징되는 사랑만이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시선을 끈다. 인터넷 방송 ‘라디오21’ 홈페이지에 ‘푸르리툰’을 연재했던 박순구는 이라크의 가족들과 한국의 가족들의 일상을 대비시키며, 전쟁의 참혹함을 깊이 공감하게 한다. ‘기생충’의 작가 김미영은 자신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컬트 개그만화의 맛을 그대로 살려, ‘반전’의 의미를 엉뚱한 방향으로 확장하는 재미있는 시도를 보여준다. 스포츠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심차섭은 여러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차이의 문제들을 풍자적인 한 컷 만화로 풀어낸다. ‘비빔툰’의 작가 홍승우는 대사 한마디 없는 흑백만화로 우리의 분단 현실을 드러낸다. 딴지일보의 기자로 활약했던 도대체는 연필 선만으로 단순화된 만화를 통해 이라크전의 배후에 깔려 있는 미국의 의도를 풍자하고 있다. 올해 3월 ‘반전의지의 교감과 확장을 위한 고경일의 만화메시지’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만화 전시회를 가졌던 상명대 교수 고경일은 독특한 판화체의 만화를 선보이며, 제국주의적인 본성이 지닌 폭력성과 야만성을 고발한다. ‘달려라 봉구’의 작가 변병준은 이라크 전쟁에서 죽어가는 소년과 한국의 소녀가 공감각적으로 상처를 교신한다는 내용을 판타지처럼 그려낸다. ‘강풀닷컴’으로 유명해진 강도영은 전쟁으로 무참하게 죽어간 아이들이 나무로 환생한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경고한다. 다음 홈페이지에 ‘Dogo'를 연재하고 있는 신명환은 탱크와 같은 전쟁무기가 평화적으로 사용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전제하에 이 세상 모든 아이들과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따뜻한 세상을 보여준다.
바다출판사 160쪽. 8천500원. (02)322-3885